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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경기 시각예술 창작지원 성과발표전 생생화화: 生生化化
《궤적을 연결하는 점들》
𝗖𝗼𝗻𝗻𝗲𝗰𝘁𝗶𝗻𝗴 𝘁𝗵𝗲 𝗗𝗼𝘁𝘀
《궤적을 연결하는 점들》
𝗖𝗼𝗻𝗻𝗲𝗰𝘁𝗶𝗻𝗴 𝘁𝗵𝗲 𝗗𝗼𝘁𝘀
2024.11.27 ~ 2025.1.26
고양시립아람미술관
참여작가
강상우, 김대환, 김민정, 김진기, 김현주&조광희, 서성협, 이세준, 이희경, 전보경, 최윤지, 홍수진
주최
경기도, 경기문화재단
주관
고양문화재단
후원
제비스코
고양시립아람미술관
참여작가
강상우, 김대환, 김민정, 김진기, 김현주&조광희, 서성협, 이세준, 이희경, 전보경, 최윤지, 홍수진
주최
경기도, 경기문화재단
주관
고양문화재단
후원
제비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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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터널을 지나는 법>, 2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7분 10초, 20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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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걸어간다.> 매트필름 위에 UV 프린트, 150x300cm (17개), 가변설치, 20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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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처음 그녀들을 만났을 때 손님 없는 평일 오후의 식당은 한산 했고 나는 쭈뼛거리며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막상 계획도 없이 말을 붙였었다. 답사와 리서치를 작업의 수행 방식으로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던 시기라 서툴기 그지 없이 외국인에 대한 막연한 생각과 무지한 질문을 마구 쏟아냈었는데 이제 어언 3년이 가까운 시간을 함께 지내다보니 그녀들이 얼마나 친절하고 인내심 있는 태도로 자신의 삶을 설명하고 또 증명해야 했는지 이제와서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25년을 살아온, 이제 첫째 아이가 사회인이 될 동안에도 여전히 낯선 사람이었고 비가시화 되는 존재인 이주여성은 한국인의 며느리로 한국인과 결합한 재생산자로 잠시 드러나지만 그 외의 정체성들은 묻혀야했다. ‘이주’라는 것은 단순히 국가를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존재증명을 반복 하는 과정이다. ‘아시아’를 배경으로 둔 사람들의 이주는 국가가 만들어낸 경로였고 그 길은 철저히 식민 자본주의적인 것이었다.
히잡을 쓴 그녀들과 있으면 길 한복판에서 목소리가 큰 혐오자를 만나게 된다. 그렇게 당당한 혐오와 위선도 없는 차별은 길을 걷거나 택시를 이용하는 일상생활에 일어난다. 이것은 혐오자 개인의 문제일까? 그가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게 힘을 실어준 것은 이 사회일 것이다. 올 해로 산업연수생제도가 시작 되었던 것이 30년, 고용허가제가 20년이 되었다. 한국사회에서 권리를 갖지 못한 채 위험한 일에 내몰리고 있지만 사업장변경제한 문제는 여전히 바뀌지 않고 지역제한까지 실시되며 착취를 심화 시키고 있다. 위험한 일에 내몰린 사람들이 죽고 있지만 이주민에 대한 가짜뉴스와 우기기 같은 저열한 혐오가 부끄럽지 않은 사람들이 광장에서 떼를 쓴다. 미국발 반무슬림 정서는 지역의 길거리에서 우리에게 실재의 위협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제노사이드를 반복하는 세계는 거대한 광란에 휘감겼던 식민과 근현대의 상흔이 치유되기 전에 시체 위에 집을 지었다. 자본주의가 자유의 탈을 쓰고 타인의 삶을 파괴하도록 용인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이다. 하지만 그녀들은 사회의 차별이나 배제 경험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부던히 불행을 어깨 뒤로 던지며 자신의 삶을 향해 나아간다.
이번 전시의 영상 <긴 터널을 지나는 법>은 2채널 비디오로 ‘이주’라는 과정의 시간에 대한 이미지를 담고 있다. 지난 작업에 인터뷰이로 참여해주었던 나왕엔다, 윤띠아나 씨가 출연해주었는데 늘 뒷모습이나 옆모습, 움직이는 모습만 담았지만 이번에 우리는 똑바로 카메라를 보았다. 이것은 그 뒤의 나-작가와 그녀 사이의 이해가 깊어지며 자연스런 초상을 담아낼 수 있는 순간을 함께 맞이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영상은 이 세계에 대한 무기력과 냉소에 맞서기 위해서 서로에게 지어보이는 미소와 그 반대편에 놓인 시선에 응수한다. 장소로부터 맥락이 분리 된 사물과 존재들 그리고 공간 사이를 오가며 보다 나은 삶을 향해 이주를 택한 그녀들의 움직임으로 기나긴 터널을 헤쳐 나가려 했다. 작품의 배경으로 등장 하는 터널_동굴은 가려진 시대의 상흔이며 약탈과 축적의 경로를 타고 국가라는 단일하고 배타적인 정체성의 경계를 이동하는 이주여성의 얽힘과 충돌 가득한 세계이다. 그리고 전시 공간의 입구부터 출구까지 설치된 작품 <밤이 걸어간다.>는 역사적 장소와 인물, 이주여성의 이미지를 투명필름에 인쇄하여 층층이 레이어를 형성하도록 전시장의 복도 공간에 설치되어 있다. 앞뒤로 겹쳐 보이는 이미지들은 버티컬처럼 컷팅 되어 관람자가 그 사이를 지나가는 경험을 통해 영상과 상호작용하며 ‘이주’라는 시간과 장소의 경험을 몸에 닿아 어렴풋하게나마 사유할 수 있길 바랐다.
2024. 이희경
환대에서 우정으로
유은순(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학예연구사)
2024년 기준 한국의 외국인 체류자는 300만에 육박한다고 한다. 단일민족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다양하고 이질적인 민족이 함께 살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은 이민자 정책에 있어 차별적 배제주의와 동화모델을 채택함으로써 단일민족을 고수하고 있다. 차별적 배제주의란 부족한 노동력을 이민자로 보충하되 국민으로 수용하지 않는 태도를 말하며, 비자 발급이 어렵고 후속 세대가 국가에 정착하기 어렵게 만든다. 2024년 3월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10쌍 중 1쌍이 국제결혼이며, 여자 외국인과의 혼인은 74.6%, 남자 외국인과의 혼인은 25.4%에 달한다. 외국인 아내 국적은 베트남(33.5%), 중국(18.1%), 태국(13.7%) 순이고, 외국인 남편 국적은 미국(27.7%), 중국(18.4%), 베트남(15.8%) 순이었다.1) 국제결혼이 증가함에 따라 혼혈이 태어날 확률도 이전보다 급격히 증가하였다. 한국은 결혼 정책에 있어서는 동화 모델을 따르는 데, 이민자에게 자국 언어, 문화, 사회적 특성을 포기하게 만들고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주입하고 국가에 동화되도록 한다. 최근 호주, 미국, 스웨덴 등에서는 이민자의 언어와 문화적 특성을 수용하고 이들의 생산력과 문화적 기반을 바탕으로 국가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다문화 모델을 채택하고 있지만 트럼프의 재선 성공과 보수주의로의 회귀로 어떤 방향으로 이민자 수용 모델이 변화할지는 미지수다.2)
한국 국적을 가지고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은 한국이 동남아시아에 비해 사회경제적으로 발달했고 여성 인권도 발달한 국가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동남아시아의 여성은 수동적이고 순응적이며 한국인과 결혼함으로써 한국에서 국적을 취득하고 발전된 국가에서 살아가는 것이 이들의 성공 신화라고 믿는다. 한국은 더욱 발전해야 하므로 덜 발전한 국가 대신 서구권 국가나 일본과 같이 고도로 발전한 국가를 모델로 삼아야 하며, 다른 국가에 관해서는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덜 발달했다고 믿는 국가를 착취함으로써 한국을 개발시켜 나가겠다는, 또 다른 식민주의적 관점을 획득하는 순간이다. 앞서 열거한 현실을 비추어 보았을 때, 이주민을 환대한다는 것은 마치 ‘개념’처럼 존재하는 것 같다. 타자를 이해하고 이들의 구체적인 삶을 존중하며, 그가 그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일은 멀기만 하다. 특히 비자와 같은 제도는 그가 놓여 있어야 할 자리를 명확하게 규정함으로써 철저하게 이방인의 삶을 살도록 한다.
이희경은 2019년 테미예술창작센터에 입주하면서 대전 곳곳에 있는 동남아시아 음식 전문점의 사장님들과 점차 교류하게 되었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이주민이 일상에 깊숙하고 조용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한국에서의 많은 차별과 배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이들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작가는 이들을 이해하는 한 방편으로 국가와 식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한국에의 정착 과정에 주목한 작업을 해왔다. 주요 작업으로 필리핀 요리 레시피를 바탕으로 여러 문화의 교차성을 탐색한 <카린데리아>(2020), 인도네시아의 여성운동과 산업연수생 제도를 통한 한국-인도네시아의 인적 교류 확대의 역사를 추적하는 <Down SuSu>(2021), 인도네시아의 여성운동 ‘그르와니’를 통해 본 여성의 능동적 주체성을 한국으로 이주한 인도네시아 여성과 겹쳐보는 <잔상>(2022), 신체에 깃든 반복적 수행과 이주민의 변화하는 정체성의 관계를 살펴보는 <목표를 잊으면 안돼>(2023)가 있다.
《생생화화》에서 선보이는 신작 <긴 터널을 지나는 법>(2024)은 고향을 떠나 한국에 정착하게 된 이주민의 역사를 긴 터널을 지나온 여정에 빗댄 영상 작업이다. 인도네시아의 풍경과 한국의 풍경이 교차되며 쉬이 지나치게 되는 이주민의 흔적을 포착한다. 이 작업에는 <목표를 잊으면 안돼>에 출연한 엔다와 <Down SuSu>(2021)의 인터뷰에 참여했던 아나가 출연하여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들이 청년 시절 습득한 여러 지식은 터널을 지나오며 포기되거나 삭제되었고 유년 시절에 경험한 어머니의 음식 솜씨만이 유지되고 있다. 한국에서 구성원의 일부로서 살아가고 있지만 동시에 버려지지 않는 정체성이란 것도 있다. 인도네시아는 무슬림 국가이지만 히잡을 쓰는 것은 선택사항으로, 아나와 엔다는 한국인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히잡을 쓰는 것을 선택했다. 변화하는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유지해야만 하는 순응적 정체성도 있는데, 한국 사회에 위협이 되지 않는 ‘착한’ 이주민임을 반복해서 증명해야 한다. 그에게 깃든 몸의 언어는 그가 살아온 한국에서의 시간을 증명한다. 그에 반해 외국인출입국사무소는 그들이 살아온 시간에 대해 그 어떤 경의도 표하지 않는다. 영상에서 지적하듯 사회의 불청객으로서 꺼끌꺼끌하게 남아있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동굴은 부천에 위치한 지하호로,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최후의 교전을 준비하면서 무기를 제조하기 위해 만든 지하 공장이다. 이 지하호가 위치한 함봉산에는 적어도 10개 이상이 존재하고 있으며, 주변으로 확대하면 수십 개가 넘을 것이라고 한다.3) 공교롭게도, 혹은 필연적으로 일본이 강제동원하여 만든 굴은 인도네시아에도 있다. 작가는 두 동굴이 꼬챙이로 꿰어지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 이번 작업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이 동굴을 촬영한 사진에 히잡을 쓴 얼굴 없는 여성을 합성한다. 일본이 실리를 위해 원주민을 강제로 동원한 역사와 동남아시아 각국에서 삶을 살아내기 위해 한국에 정착한 이들을 중첩시킨다. 이주민은 자발적인 이동이라는 점에서 강제 동원의 역사와 극명한 차이를 가지지만 그럼에도 둘 다 권력에 수동적으로 반응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영상에서 터널을 지나면서 나오는 ‘손바닥을 열어 보아라’ ‘히잡을 벗어라’ ‘무해함을, 종속 되고자 함을 증명하라’ ‘너 자신이 되지 않겠다고 순종을 맹세하라’ 등의 문구는 매순 간 마주쳐야 하는 이들의 현실이다.
이번 작업을 위해 다른 이주민과 여러 차례 미팅을 가졌으나 결국 오랜 기간 인연을 맺어 온 두 사람이 출연하였다. 여러 영상에서 작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인터뷰어 혹은 다큐멘터리스트 였다면, 이 작업에서는 인공적인 연기 혹은 행위를 요청하는 감독이 된다. 손뼉치기를 하기도 하고, 동네를 달음박질하기도 하며, 내레이션을 하기도 한다. 전문 배우가 아닌 이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임에도 카메라 앞에서 한없이 어색해한다. 간간이 삐져나오는 웃음이 카메라 뒤에 서 있는 작가와의 관계를 대변하는 듯하다. 그동안에도 이희경의 작업은 이주민의 여성 서사에 기반해 왔지만, 여기서는 그동안 작업에서 보여지지 않았던 작가와 이주민 여성과의 관계가 가시화되기 시작한다.
필자는 여기서 환대에서 더 나아간 우정을 발견한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환대는 자신의 영역이 침범당하는 것을 무릅쓰고서라도 타자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말한다. 타자를 배척하지 않고 수용하는 자세로서 환대는 물론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타자를 주체에 비해 열등한 존재로 암암리에 상정한다는 비판도 있다. 필자는 이희경과 아나, 엔다의 관계를 단순히 작업을 위해 오랜 기간 라포를 쌓아왔다고 표현하고 싶지 않다. 작가는 작업을 하기 위해 라포를 형성해온 것이 아니라, 이들과 우정을 쌓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이러한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스미스는 우정은 “친족이나 다른 강제적 관계의 체제에 의해 잠식되고 있는 사회적 공간에서 개인들에 의해 창조된 사회적 네트워크, 즉 호혜성 관계”라고 규정한다. 아나와 엔다, 내레이션으로 참여한 마리안띠까지, 이들의 이야기는 작가와의 변해가는 관계 속에서 그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자신의 이야기를 형성해 간다.
이러한 작업의 변화는 전시장의 구성 변화로 이어진다. 인도네시아와 한국, 그리고 작가가 합성한 여러 이미지를 크게 출력하고 칼집을 내어 관람객이 사진 사이를 통과하도록 공간을 연출하였다. 이를 통해 관람객을 단순히 작업을 보는 사람이 아닌, 긴 터널을 통과해 온 이주민의 삶을 간접적으로 몸으로 경험하는 참여자로 변모시킨다. 작가는 새로운 작업을 위하여 또다른 이주민을 계속해서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새로운 관계를 통해서만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처럼.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이희경의 작업의 창작력은 창조적 네트워크에서 비롯된다. 이는 동일한 관계에서도 계속 창발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며, 그동안 일구어 온 우정 속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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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지민, 「국제결혼 덕에 12년 만에 혼인건수 늘었다…10명 중 1쌍 ‘국결’」, 『한국경제』, 2024년 3월 19일,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031915257 (접속일: 2024년 11월 13일)
2) 김준식, 「이주 노동자는 쓰다 버리는 소모품인가?」, 『프레시안』, 2016년 3월 18일,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34196 (접속일: 2024년 11월 13일)
3) 「세월의 흔적, 근대문화 역사유산 부평지하호」, 지역N문화, https://ncms.nculture.org/legacy/story/8780 (접속일: 2024년 11월 13일)